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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인 세 명 중 한 명은 지방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방간이 간경변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저도 이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지방간이 그저 "술 좀 줄이면 낫는 가벼운 문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지방간, 정말 가볍게 봐도 되는 걸까
일반적으로 지방간은 "술 끊고 살 빼면 낫는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20년 넘게 지방간 진단을 받고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방치했다가 이미 간경변증 문턱에 도달한 경우가 있고, 심지어 30대에 간섬유화 4단계 직전까지 진행된 사례도 있습니다.
간섬유화란 간세포가 반복적으로 손상되면서 정상 조직 대신 딱딱한 흉터 조직인 섬유 조직이 자리를 대신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다친 피부에 흉터가 생기듯 간에도 영구적인 흉터가 쌓여가는 겁니다. 그 진행 단계가 4단계에 이르면 간경변증, 즉 우리가 흔히 '간경화'라고 부르는 상태가 됩니다.
더 놀라운 건 전체 지방간 환자 중 알코올이 원인인 경우는 17%에 불과하고, 나머지 83%는 비알코올성, 즉 대사 이상 지방간이라는 점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제가 직접 확인하고 적잖이 당황했던 수치입니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분도 비만, 당뇨, 고지혈증만으로 충분히 지방간에서 간경변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지방간: 간세포 내 중성 지방이 5% 이상 쌓인 초기 상태. 이 단계에선 생활 습관 교정으로 회복 가능
- 지방간염: 지방 축적이 지속되어 간세포에 염증이 발생한 단계. 섬유화가 시작되는 골든타임
- 간경변증: 섬유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간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 현재 이를 되돌리는 치료제는 없음
- 간암: 간경변증 상태에서 매년 2~4% 확률로 발생 가능
간섬유화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간이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간은 기능의 대부분을 잃기 전까지 스스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실제로 응급실에서야 간경변증을 처음 알게 된 분의 사례를 보면, 이미 복수(腹水)가 가득 차 만삭 임산부보다 배가 더 볼록한 상태였습니다. 그 전까지 본인은 그냥 술을 조금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복수란 간이 심하게 굳어 수분 조절 물질을 충분히 만들지 못할 때 복강 내로 액체가 빠져나와 쌓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복수가 차면 숨쉬기도 힘들고 소화도 안 되며, 소변과 대변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설마 그 정도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사례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더 심각한 건 불응성 복수(refractory ascites)로 진행된 경우입니다. 여기서 불응성 복수란 이뇨제 같은 약물로도 더 이상 복수를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1~2주 간격으로 복수를 직접 뽑아내는 시술이 유일한 방법이 되고, 근본적 회복을 위해서는 간이식 외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또한 간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서 식도와 위 주변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위식도 정맥류(esophageal varices)가 생기기도 합니다. 위식도 정맥류란 우회 혈액이 약한 혈관을 지나면서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실제로 피를 대량으로 토하는 응급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복수가 찼다는 건 간이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는 뜻
이틀에 한 번씩 소주 세 병 반을 마셨음에도 주변에서 자기만 멀쩡하다고 느꼈다는 이야기, 참고 자료에서 읽으면서 저는 그 부분이 가장 섬뜩했습니다. 술을 잘 마신다는 자만심이 간을 갉아먹는 시간을 늘린 셈이니까요. 간이 침묵한다는 건 단순히 증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파국이 오기 직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알코올이 간에 작용하는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술이 들어오면 간의 분해 효소가 알코올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반복되면 간세포 안에 지방이 과도하게 쌓이고, 이것이 지방간의 시작입니다. 지속적으로 알코올이 공급되면 간에 염증이 생기고, 정상 간세포가 줄어드는 자리를 섬유 조직이 채우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간경변증(liver cirrhosis)입니다. 한 번 굳어진 간은 현재로서는 약으로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비알코올성 경로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만이 되면 지방세포에서 나오는 여러 물질이 인슐린의 기능을 방해하는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을 유발합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이 있어도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에너지로 쓰이지 못한 포도당은 결국 지방으로 변환되어 간에 쌓이고, 지방간에서 지방간염, 간경변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습니다.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분이 당뇨와 고지혈증만으로 간경변증 문턱에 도달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방간염이 마지막 골든타임인 이유
제가 이 주제를 살펴보면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간경변증은 현재 치료제가 없지만, 그 직전 단계인 지방간염은 치료가 가능합니다. 지방간염에서 섬유화를 막는 데 성공하면 간경변증으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시기를 놓치면 간경변증이 되고, 간경변증에서 간암 발생률은 매년 2~4%에 달합니다.
문제는 지방간염이 지방간과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증상도 통증도 없는 상태에서 조직 검사를 해봤더니 둘 다 지방간염이었다는 사례를 보면서, 저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방간이라고 안심했던 분이 실제로는 간경변 직전 단계였던 겁니다.
현재로서 지방간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두 단계입니다. 먼저 간 섬유화 스캔 검사(FibroScan)를 통해 간의 지방량과 딱딱한 정도를 수치로 확인합니다. 여기서 FibroScan이란 초음파 진동을 이용해 간의 경도(stiffness)를 측정하는 비침습적 검사를 말합니다. 이 수치가 14 이상이면 간경변증으로 분류됩니다. 섬유화가 2단계 이상으로 추정되면 간 조직 검사를 통해 지방간염을 최종 확인합니다. AST, ALT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단순 지방간이 아닌 지방간염 가능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AST·ALT란 간세포가 손상될 때 혈액으로 흘러나오는 효소 수치로, 간 염증의 정도를 반영하는 기본 지표입니다.
제 경험상 이 검사들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아무 증상이 없으니까"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간의 특성입니다. 아무 말도 안 하다가 한계점에서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술을 안 마시면 알코올성 간경변은 안 걸리는 건가요?
A. 알코올성 간경변은 술이 원인이지만,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분도 비만·당뇨·고지혈증 같은 대사 이상만으로 비알코올성 간경변증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전체 지방간의 83%가 비알코올성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하고 가장 놀랐던 수치이기도 합니다.
Q. 지방간 진단을 받았는데 증상이 없으면 그냥 지켜봐도 되나요?
A. 일반적으로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살펴본 사례에서는 증상이 전혀 없던 분들도 조직 검사 결과 이미 지방간염으로 진행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방간염은 간경변증으로 가는 마지막 골든타임이기 때문에, 대사질환이 동반된 지방간이라면 섬유화 스캔 검사를 통해 진행 정도를 확인해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Q. 간경변증이 되면 술만 끊으면 좋아지나요?
A. 술을 끊는 것은 진행을 늦추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미 굳어진 간 조직을 회복시키는 치료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 복수를 주기적으로 뽑아내는 시술을 반복해야 하고,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간이식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점이 지방간염 단계에서의 관리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
Q. 간 수치가 정상이면 지방간염이 아닌 건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AST·ALT 수치가 정상 범위여도 지방간염이 진행 중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수치가 올라가 있다면 지방간염 가능성을 의심해볼 근거가 됩니다. 정확한 확인은 섬유화 스캔 검사와 필요 시 조직 검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혈액 검사 수치만 믿고 안심하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지방간은 가볍게 볼 병이 아닙니다. 증상도 통증도 없이 조용히 지방간염으로, 간섬유화로, 간경변증으로 이어지는 게 간이라는 장기의 특성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무서웠던 건 "몰랐다"가 아니라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봤다"는 점이었습니다.
비만, 당뇨, 고지혈증 같은 대사질환을 갖고 있다면 지방간 여부와 무관하게 섬유화 스캔 검사를 한 번쯤 받아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미 지방간 진단을 받은 분이라면 지금이 바로 지방간염으로 진행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할 시점입니다. 굳어지기 전에 확인해야, 되돌릴 기회가 생깁니다.